나는 실패가 아닌 잠시 쉬는 시간을 갖은 것이다.
[ 글쓴이 활동내역 ] 작성일 : 2025.08.31 23:56

  매년 받는 직장 건강검진. 공복 수치가 186이라 높다고 보건소에서 연락이 와서 관리해 보고 높으면 병원 가겠다 답변을 하고 끊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무엇을 어찌 관리하겠다고 대답을 했을까 싶다. 당시 심각하게 생각하고 관리를 했다면 좋았을 터인데 말이다. 아마 살 빼면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중학교 이후로 날씬했던 적이 없었고. 라면과 밥을 좋아했다. 탄수화물에 목 마른 사람처럼 매일매일 라면을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일과 후 김치에 라면을 먹는 게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 생각할 만큼 좋았고 불닭볶음면은 최애 음식이 되었다. 글을 쓰면서도 침이 고인다. 역시 상상만 해도 좋은 불닭볶음면. 기억을 더듬어 보면 20대에는 55 사이즈를 입었던 기억도 있다. 55 사이즈를 입던 시기는 스치듯 안녕 해부렀다.  결혼 후 출산하고 30대 중반부터는 체중이 증가하다 못해 감당이 되지 않을 정도로 불어났다. 육아에 집중하던 나는 살이 찌고 있지만 힘들다는 이유로 다이어트는 머리로만 하고 직접적으로 실천을 하지 않았다. 살이 찌고 있다 생각은 365일 24시간 하고 있지만 몸이 아프거나 생활하면서 불편함이 없기에 미루기 바빴다. 20년도 건강검진 때도 관리를 하겠다고만 하고 실행하지 않았던 나. 왜 의지와 다르게 실행을 못 하는가. 아직도 의문이다.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은 누군가를 돕고 어떤 이를 돌봐주는 일이다.  나의 직업이다.  누군가를 돕기 위해서 어떤 방법이 좋을지 기획을 하고 실행을 한다. 하지만 정작  나의 상태를 확인하고 계획한 적이 없었다. 사람을 직접적으로 상대하는 업무이다 보니 스트레스가 가중되기도 했다. 직장 내 스트레스는 어디든 존재하지만 사람에게 오는 감정적인 스트레스는 가끔 나를 코너로 몰기도 했다. 이런 날이면 걸신들린 사람처럼 탄수화물을 평소 보다 더  섭취했다. 특히 라면이나 밥을 마구 먹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와서 먹고 바로 잠을 잤다. 밥 먹고 하는 운동은 생각 해본 적도 없다. 난 항상 “운동이 뭣이 다요.?” 하고 눈을 감았다.  자매들 중 유일하게 엄마와 비슷하다. 외모 체형까지 붕어빵이다. 그래서일까 당뇨가 있으셨던 엄마에게 유전자를 물려받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생각해 보면 유전력보다는 탄수화물을 극하게 좋아한 식성 탓일 텐데. 가끔 당뇨를 부정하고 싶을 때는 엄마를 닮아서 그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진단받고 약을 먹으면서 관리를 하고 2년쯤 되었을 때 의지 활활인 내 모습을 의사는 높게 본 듯하다. '직듀오'를 복용하고 있었는데 약을 '다이아백스 500' 변경하고 8개월 뒤에는 250. 6개월 뒤에는 단약 결정. 의지가 높았고 살도 열심히 빼고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 단약하는 기준을 보면 5.5 정도에서 단약을 하던지 수치를 두세 번 이상 유지했을 때 하는 거 같았다. 내 수치는 그 정도는 아닌데 의사는 단약을 강행했고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한편으로는 아직은 아닌 거 같은데 싶었지만 내심 좋기도 했다. 의사는 체중이 한참 줄고 있으니 단약을 하면 더 의지를 불태워 살을 뺄 것이라고 판단한 거 같다.  이제 와 외치지는 말이지만. “쌤~ 저는 그리 독하디 독한 사람이 못 되어라~.” 라고 말하고 싶다. 다시 태어난다면 차라리 참치로 태어나는 게 더 행복할 듯하다. 이게 당시 내 심정이었다.

 

 

방패와 창이 사라지니 안 그래도 먹기 싫은 야채를 많이 챙겨서 먹어야 했고 운동도  많이 해야 했다. 단약이라는 고지에 올라 기쁨도 있었지만 잠시 아주 잠시였다. 기쁨보다는 “오메 힘든 거.”  “우라질”을 더 많이 외친 거 같다. 나에게 야채란 고구마 정도인데 매끼 양상추, 양배추 먹고 양을 늘려야 하는 것은 출산의 고통만큼이나 컸다. 아니다.  출산은 한번 하고 나면 그만이지만 이것을 평생 한다고 생각하면 화딱지가 났다. 단약하면 마음을 더 독하게 먹고 해야 하는 게 인지상정인데 그러지 못했다. 약을 먹고 혈당이 안정적으로 나왔던 수치에 길들여진 것인지 익숙함에 벗어나기가 힘들었다. 약을 먹고 운동하고 봤던 수치와 다른 상황에 혼돈과 스트레스가 몰려왔다.

 

 

관리를 못하고 있는 건지 안 하고 있는 것인지 수치를 보면 온갖 잡생각이 들었던 시점이었다. 다시 받은 숙제 검사 결과가 처참하다. 의사는 "운동 좀 더 하고 제발 다이어트 좀 합시다." 로 결론을 내렸다. 그놈의 살 이 문제다. 알고 있는데 그게 어디 쉽다요. 감량이 안돼서 힘든 건 나인데 의사가 혈안이 되어있었다.  답답하면 살 빠지는 약을 처방 하시라고요 라고 속으로 외치면서 진료실을 나왔다.  다시 찾아온 숙제검사 날 약 처방을 받았다. 혈당과 체중이 넘어야 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기 때문이다. 늘어난 체중과 올라간 당화 혈색소는 의사를 화나게 한 것인지 다이어트 실패한 날 포기 한 것인지 약을 처방했다. 아주 많이 화난 것이 아닌지 가장 약한 약을 처방하려고 했다. 이왕 처방하는 거 250이 아닌 500을 달라고 사정해서 받아왔다. 이렇게 1년의 단약 기간이 끝이 났다.

 

 

 방심은 금물이다.  한번 빠진 살 또한 영원히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수치가 잘 나오고 체중이 잘 빠져 순간 느슨해져 버렸다. 실패다. 결국 자신과 싸움인데 철저히 패배했다. “오~ 이 정도는 괜찮은데?.” “오늘 하루만.” 외친 결과물이기도 했다. 아침에 눈뜨면 가장 먼저 하는 게 다이어트 결심이었다. 심각한 요요가 온 것을 보면서도 졌다. 몸에 붙어 있는 살과 체중계가 보여주는 숫자.  혈당에게도 졌다. 졌어. 하지만 영원한 패자는 없다고 하지 않는가. 작은 노력이 모여 25년도에는 4년 전 몸무게로 돌아갔다. 매일 2만 보씩 걸으려 노력했고 틈틈이 걸어서 몸무게는 다이어트 성공 시점으로 돌아갔다. 실패하고 빠진 날도 있었지만 결과가 좋다. 하지만 줄어든 체중은 줄었지만 혈당기의 숫자는 여전히 춤을 추고 있었다. 병원을 바꿔서 약을 다시 처방 받았다. 바뀐 약으로 복용 후 살도 더  빠지고 춤을 추던 혈당도 조금 안정적으로 바뀌고 있다.

 

남들이 하는 단약을 해봤지만 나에게 다시  하라고 하면 현시점에서는 다시 하고 싶지 않다. 스스로 얼마나 의지박약인지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과정이 보다 안정적이고 다이어트에 대한 요요가 없다면 다시 생각해 볼 일이지만 지금은 NO다. 단약을 통해서 알게 됐다. 당뇨 관리는 정말 꾸준함이구나. 다이어트도 마찬가지다. 아직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수치가 안정적이지 않고 예전보다 좋지 못하다. 하지만 한번 해봤는데 두 번을 못 할까 싶은 마음으로 관리 중이다. 어떤 이는 나를 보고 관리를 못 한다 안 한다 하지만 난 나다. 내가 할 수 있는 안에서 자유롭게 하고 싶다. 당뇨라는 틀안에 인생을 너무 가두면서 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남들 눈에는 어찌 보일지 모르겠지만 많은점이 변했다.체중을 20킬로 감량해 봤고 소식적 스치듯 입었던 55 사이즈까지는 아니지만 66 사이즈를 성공적으로 입게 되었다.. 10분만 걸어도 헥헥 거리던  모습은 사라지고 최대 6만 보 이상을 걸어 봤다. 라면에 야채를 넣어서 먹고 죽기 보다 싫은 야채도 이제는 잘 먹고 즐기고 있다. 사약 같은 아메리카노의 쓴맛을 알게 해준 당뇨. 


 단약과 다이어트는 실패했었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왜. 죽을 때까지 해야 하는 것이니 실패가 아닌 잠시 쉬는 시간을 가졌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이제 쉬는 시간 끝이니 다시 하면 된다. 남은 건 꾸준한 운동 습관과 유지뿐이다. 당초보의 열정을 기억하며 아니 기억을 더듬어 열정을 다시 꺼내 볼 생각이다.  이런 바램과 노력이 모여 평생 당화혈색소 5.5를 유지하면서 지내고 싶다. 또 이번에는 66 사이즈를 스치듯 안녕이 아닌 평생 내 사이즈로 만들길 소망해 본다. 죽기 살기로 당 털다 보면 두 가지 목표는 이루어지겠지요.

글/ 당건회원 - 죽기살기로 당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