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항상 무서웠다. 어렵기도 했다. 주변 친구들이 부모님께 편하게 말하거나 대화하는 모습을 보면 부러웠다. 살가운 말투. 사랑과 애정이 담긴 대화 내용들. 남들이 보면 뭐 그런 게 부러워? 라고 물어볼 수 있지만 나에게는 그런 것조차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오늘 만큼은 무섭고 두려웠던 아빠에게 편하게 말해보고 싶다. 무섭고 공포스러운 아빠가 금방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했어. 어릴 적 쓰러졌을 때도 금방 일어났잖아. 이번에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는데 왜 4년이나 누워있는 거야. 아빠가 누워 있는 동안 선물로 주려고 내복이랑 무릎 담요도 준비했는데 왜 받지 못하고 누워 만 있는 거야. 누워있는 동안 힘들지 않은지 물어 보고 싶은데 아빤 오늘도 대답이 없네.의 대상이 아닌 그저 사랑하는 우리 아빠에게 마음속에 담아 놓았던 말을. 갈 때마다 야위어가는 얼굴을 마음이 아파 쳐다볼 수가 없잖아. 병원을 찾을 때마다 팔 다리가 비틀어지는 아빠를 보면 너무 고통스럽지 않을까 마음이 아프잖아. 차라리 이렇게 대답 없어도 좋으니 아무런 고통을 느끼지 못했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들었다. 한 번씩 그런 생각을 하고 다시 정신을 차리기 일쑤였다.
그래도 딸이 낳은 손주 얼굴은 한 번이라도 봤으면 좋겠단 생각도 간절했다. 하루에도 수천 번 마음이 변덕 부리 듯 왔다 갔다 했다. 이럴 땐 나도 내 마음을 모르겠다. 아빠가 병원에 있는 동안 매일같이 생각했다. 아빠가 일어나 주기만 하면 그동안 잘 못한 행동 전부를 용서해 주겠다고.
근데 왜 일어나지 못하는지 마음이 아프다. 왜 일어나지 못하고 그렇게 떠나 버렸는지. 일찍 가버릴 거면서 그렇게 나를 힘들게 아프게 만들었는지. 묻고 싶다.
어릴 적 아빠는 술을 마시면 물건을 던지고 폭언을 일삼았다. 그런 아빠의 행동은 나의 자존감을 훔쳐 갔다. 아니 저 멀리 보이지 않는 곳에 물건과 함께 내동댕이 쳐 버려졌다. 아빤 모든 가족들의 희생을 당연하다 여기 곤 했다. 다른 가정의 아빠들과 달리 가장의 책임감은 느낄 수 없었던 아빠.
돈 한 푼 벌지 않고 자식들 굶기는 아빠. 왜 그런 이기심으로 가족을 힘들게 했을까 묻고 따지고 싶지만 대답이 없는 아빠다. 이런 미워하는 마음을 느끼는 것인지 누워있는 아빠는 대답을 하지 않는다. 마음속은 언제나 사랑과 원망 미움이 공존했다. 야속하게도 난 그런 아빠라도 정말 좋아하기도 했다. 아빠가 떠나고 찢어질 것 같은 마음을 속일 수 없었다.
눈물 샘이 터져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흐르는 눈물 앞에선 아빠가 미웠다고 싫었다고 만 할 수 없었다. 부정할 수 없었다. 그렇게 못 되게 할 거면 가족을 힘들게 할 거면 차라리 좀 더 오래 살지 그랬어. 다른 가정들처럼 예쁘고 화목하게 가족사진도 찍고 결혼할 때 같이 손잡고 걸어주고 예쁜 우리 아들도 만나고. 아빠를 사랑하지만 아빠를 미워했던 것도 알고 있지. 아빠라고 불러보지만 오늘도 대답할 수 없는 아빠…
내가 상처 받고 아팠던 마음까지는 억지로 용서하지 않을 거야. 내 마음이 상처가 아물 때까지 천천히 용서할 거야. 마음의 새 살이 올라오고 단단해지면 그때는 온전히 아빠를 용서할게. 마음이 가는 데로. 언제나 나와 가족들을 힘들게 했고 앞으로도 평생 마음 한구석에 남아 괴롭힐 우리 아빠. 마지막까지 이기적이었던 아빠. 떠나기 전에 이름 한번 불러주고 가지. 미워 그리고 정말 사랑해 아빠. 그곳에서는 편히 쉬어 그리고 살아 생전 지키지 못했던 가족들 지켜줘…
아빠 안녕.
글/ 당건회원- 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