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살이 찌고 싶었다. 나이가 더 들면 내 마른 체형이 더 볼 품 없어 보일까 살이 쪘으면 좋겠다 싶었다. 체중을 늘리고 싶어 회사에서는 간식으로 과자를 열심히 먹었고 저녁에는 빵을 추가로 먹었다. 특히 식빵을 자주 먹었다. 이유는 단순하다. 식빵이 제일 맛있기 때문. 나이 먹고 살이 좀 있으면 아파도 잘 버틸 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당뇨라고 한다. 병원을 방문하는데 수험생처럼 떨리기 시작했다. 당뇨 진단을 받으니 회사 생활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오랜만에 서울로 출장을 간다. 출장을 가는데 준비물이 야무지게 챙겨서 기차에 올랐다. 가방 안에는 서류 뭉치와 현미 섞은 잡곡밥 저당 빵도 넣었다. 기차는 열심히 달려 천안아산역을 지났다. 슬슬 잠이 온다. 기분 좋게 잠이 들었다 본능적으로 몸이 움직인다. 눈 떠보니 서울역 도착. 잠이 와서 기분 좋게 잠들었는데 기분이 영 좋지 않다. 증상들이 오는 거 같은데. 역 안에 식당을 찾아다녔다.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자리도 없고 기다리기도 귀찮아 사무실로 걸음을 재촉했다. 가방에서 가지고 간 밥을 꺼냈다. 다른 먹을 것이 있는지 봤는데 냉장고에 어제 먹은 단무지가 있다. 이것 뿐인가 생각할 겨를도 없이 허겁지겁 밥을 먹고 저당 빵도 야무지게 먹었다. 분명 저혈당이 보내는 신호였다.
이제는 혈당을 보지 않아도 대충 감이 왔다. 몸에서 보내는 신호 감지가 익숙해진 듯하다. 식후 혈당도 좀 보고 소화도 시키고 싶은데 그럴 틈도 없이 회의는 시작되었다. 몇 시간 동안 꼼짝 않고 앉아만 있었더니 음식들이 배 안 가득 그대로 있는 듯한 느낌 속으로 최면을 걸 듯 중얼거렸다. 제발 소화 좀 시키고 팔다리고 내려가라고. 그래야지 저녁에 고기를 먹을 수 있다고. 갈비살을 먹어야 하는데 이놈의 음식들은 위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 거 같다.
길고 길었던 회의는 끝이 났고 점심에 먹었던 음식물을 배 한가득 담아 회식 장소로 이동했다. 가기 전 편의점에서 무알코올 맥주를 잊지 않고 준비했다. 사회생활 하는데 분위기는 맞춰야 하는 당뇨인 쉽지 않다. 고기는 몇 점 먹지도 못하고 분위기 맞춘다고 무알코올 맥주만 마셨는데 배에 가스만 더 채워준 거 같다. 여전히 팔다리로 내려가지 못하고 위에 머물러 있는 음식과 무알코올맥주. 소화를 시키려 혼자서 밖을 서성이기도 했지만 역부족인 거 같다. 도저히 안 될 거 같아서 기차표를 예매하고 먼저 나왔다.
부산으로 돌아가는 기차 안. 내 배에는 아직도 가스만 한가득 이다. 당뇨 관리한다고 먹고 걷고 했더니 몸이 변했나 보다. 먹고 움직이지 않으니 소화도 안되고 가스만 남기다니. 좀 걷고 싶다. 가스가 빠질 때까지.. 부산까지 걸어가면 가스다 다 빠지고도 남을 텐데..
글/ 당건회원 -영도다리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