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세 당뇨 이야기 .
작성일 : 2025.04.07 22:44

 올해 4월에 결혼은 한 파릇파릇 한 새댁이다. 사실 제 인생에 당뇨가 올 것이라고 생각 한 적은 없었다.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가족력이 있었도 무슨 자신감인지 당뇨에 걸리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하며 살았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사진을 찍어서 인스타에 올리면 팔로워 수가 늘어나고 인기 계정이 될 만큼 나의 식탐과 맛집 여행은 계속 진행되었다. 대식가다. 주변에서 먹방 유튜버를 제안할 정도로. 실제로 제안도 많이 들어왔다. 운동은 전혀 안 했다. 먹어도 먹어도 살이 찌지 않아 축복 받은 몸이라고 생각했다. 올 4월 결혼식도 별다른 다이어트도 없이 예쁜 드레스를 입고 진행했기에 당뇨는 생각한 적이 없다.

 


 23살부터 회사 생활을 했고 잦은 회식과 모임을 즐겼다. 사람들도 너무 좋고 노는 것이 좋아 한 달 중 20일 이상은 술을 마셨다. 일의 특성상 교대 근무로 오전, 오후, 야간 3교대를 일주일씩 번갈아 가면서 했다. 이러니 식사시간은 언제나 일정하지 않았고 10년 동안 이 생활은 이어졌다. 엉망인 생활패턴. 일정하지 않은 식사시간. 마지막으로 술이 부른 대참사다. 회사를 다니니 건강검진도 매년 받았지만 늘 당뇨 전단계 수준으로 결과를 받았다. 결과를 보고도 엄마가 당뇨니깐 나도 이 정도는 나오나 보다 나오는구나 하고 넘겼다. 당뇨에 심각성을 하나도 인지하지 못 한 체. 20대답게 당뇨보다는 현재 내 체중과 허리둘레가 더 중요했고 외모에 집중했다. 그렇게 딱 10년이 지났다. 퇴사를 하고 예비신랑과 동거를 시작하며 결혼을 준비하는데 놀고 먹고 반복. 마음속으로 그동안 고생한 나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했다.

 


 일을 그만둔 지 2년이라 건강검진을 받을 일이 없었다. 겉보기에도 매우 건강한 여성이었고 특별히 아픈 곳도 없으니 건강에 전혀 신경을 안 쓴 거 같다. 결혼 후 한 달 만에 임신을 하니 더욱 건강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 의심할 수가 없었다. 아픈 곳도 없고 임신도 이렇게 빨리 되었으니 노 프라블럼 외치며 지냈는데 산전검사를 받고 연락이 왔다. 검사 결과 혈당이 높다고 당장 내과로 내원 하라는 연락. 가보니 공복 혈당 281. 당화혈색소 11.2. 듣고도 실감도 안 나고 심각성을 인지 못하는 나. 사실 수치를 말해도 정상이 얼마인지 어떤 상황에 나를 부른 건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이런 모습이 의사는 답답하다는 듯 설명을 해줬고 대학병원 의뢰서를 써줄 테니 가라고 했다. 산모도 태아도 위험해질 수 있다고. 의사 말은 안 들리고 머릿속에 엄마만 생각났다. 왠지 엄마에게 알리면 안 될 것 같았다. 더 힘들어할 것 같고 죄책감을 가질 것 같아서. 입원을 하면 엄마를 속일 수 없으니 사정을 이야기하고 집에서 인슐린 투약을 시작했다.

 


 당뇨 공부를 시작했다. 산모라 약 처방은 안되고 인슐린만 주는구나 이때 알았다. 스스로가 배에 주사한다는 사실보다 괴로운 건 따로 있었다. 마음이 너무 힘들고 아팠다. 엄마 생각도 나고 뱃속에 아이도 걱정이 되고. 인슐린을 맞으며 공부하고 노력했는데 5월에 찾아온 아이는 7월에 내 곁을 떠나갔다. 초음파로 잘 놀고 있는 젤리 곰 형태의 태아를 보았고 심장 소리도 우렁차게 분명 들었는데. 내가 들은 심장소리만큼 건강하게 태어날 줄 알았는데. 당뇨 때문인지 스트레스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혼란스러웠다. 마음이 너무 무거워 땅으로 꺼질 듯한 기분은 여러 날이 지나도 변하지 않았다. 힘들고 무거운 마음을 좀 내려놓고 싶어 원래 내 곁에 잠시만 머물다 가려고 했구나. 그래서 빨리 떠났구나 하고 생각했다. 한 달이 지나니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비록 아이는 떠났지만 당뇨인 걸 알았고 임신전 당뇨환자는 산모도 태아도 위험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 더 관리를 철저히 하고 있다. 정상 혈당을 만들어 다시 임신 계획을 해보려 한다. 그때도 인슐린은 피할 수 없겠지만 건강한 수치로 시작한다면 이번에는 안전하게 잘 지킬 수 있을 것이라 믿어 본다. 다음에는 엄마가 건강하게 잘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을게. 건강하게 다시 만나자…

 

글 / 당건회원- 투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