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30년 당뇨와 함께 사셨다.. 고혈압 당뇨성 망막 병증 폐부종, 만성신부전까지. 항생제 사용으로 인한 협착증 등 많은 병명을 가지고 살아오셨다. 어머니의 헌신으로 지금까지 별문제 없이 지내셨다. 6.25일 협착증 치료를 위해 병원에 입원했던 아버지는 7. 월 1일 혈당 수치 20으로 혼수상태가 되셨다. 저혈당 쇼크로 의식을 잃고 쓰러진지 어느새 2주가 지나갔다. 평일은 어머니가 상주하고 금요일 저녁부터 주말까지는 내가 어머니와 교대를 했다. 도움을 주시는 간호사, 조무사 선생님들이 계셨지만 환자 옆을 계속 지킨다는 것은 몸과 마음에 엄청난 피로감을 가져다주었다. 물론 여기에 경제적인 피로감 도 상당했다. 와상 생활을 하고 계신 아버지는 성인용 기저귀를 사용해야 만 했고 하루에 8번씩 기저귀를 가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얼마 전 심박동 수가 너무 높아 의식을 잃은 후 깨어난 아버지. 괴로우신지 아버지는 폭력성과 욕설을 많이 하셨는데 이 또한 많이 가라앉았다. 팔다리는 꼼지락거리지지만 오른손이 의지와 다르게 벌벌 떨리시는 아버지. 밤새도록 잠을 안 자고 엘튜브를 빼버려 손만 묶는 것으로 선생님과 결정을 하였다. 이름을 부르시지는 못 하지만 나를 보고 아들이라고 말하고 짧게는 하루 두세 마디 정도는 대화가 이루어졌다. 임종 가능성에 대한 설명을 들은 나로서는 희망이 보였다. 심장초음파 검사도 진행되었다. 폐 쪽에 암으로 의심되는 징후가 보인다고 한다. “아버지 당뇨와 온 갖 합병증에 이어.. 암 까지라니요.” 혼자서 마음이 무거워 혼잣말을 했다. 회복하면 너무 좋겠지만 이번 저혈당 쇼크로 인해 신체 손상이 너무 많이 간 것 같아 눈물만 흘렀다.
가족 곁에 얼마나 같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자주 보고 기저귀도 많이 갈아줄게. 연신 혼잣말을 이어갔다. 이런 내 무거운 마음과 간절한 마음이 아버지에게 전달되지 않나 보다. 몸속 염증 수치는 많이 잡혔지만 인지능력과 지남력이 매우 떨어져 시공간 사람인지가 되지 않아 정상적인 대화도 되지 않았다. 기저귀를 갈아 줄 때마다 지물은 살들로 아픈지 괴성을 지르고 나를 때리는 아버지. 쓰러졌을 당시 부디 회복해서 한 번만이라도 더 보면 좋겠다 싶었는데. 긴 간병 생활과 가족도 못 알아보고 본능과 폭력성이 앞선 채 회복될 것 같지 않은 아버지를 보고 있으면 감정이 복잡해진다. 단순 섬망증 일지 당뇨성 치매일지. 저혈당 쇼크로 인한 뇌 손상은 회복이 안되는 건지. 어머니도 걱정이 늘어만 간다.
시간은 멈추지 않고 속절없이 흘러갔다. 아버지 증상과 함께. 마음이 타들어가는 내 마음과 다르게.. 이렇게 7. 월 24일 아버지는 머나먼 여행을 떠나셨다. 저 혈당 쇼크로 회복과 의식소실을 반복하시며 4주가 안되는 시간 동안 고통받다가 돌아가신 아버지.
잠깐의 회복으로 희망을 놓지 않고 요양병원을 알아보고 기저귀도 더 주문했는데 갑작스럽게 여행을 가셨다. 임종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재빠르게 뛰어가 아버지를 봤다. 손과 발은 차가웠다. 차가워진 손발과 다르게 편안해 보이는 얼굴. 한참을 손잡고 울었다. 곧이어 의사는 아버지에게 사망선고를 했다. 살아생전 장난스레 아버지는 “자기야 나는 죽는다면 당신 품에서 죽고 싶어.”라고 말씀하기 곤했는데.
눈물이 흐른다. 그날 아버지는 어머니 품에서 마지막을 맞이하셨다. 의사들도 병원에 있는 동안 몇 번이나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말했었다. 결국 어머니 품에서 가시고 싶어 마지막까지 버티셨는지도 모르겠다. 장례식과 화장터 그리고 아버지를 선산에 안치하는 것까지 울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흐르는 눈물은 어찌할 수 없었다. 선산에 간 날은 다행히도 날씨도 너무 맑고 깨끗해 하늘도 도와주는구나 싶었다. 평소 아버지에 대한 애증의 관계로 살았는데. 일평생 자신의 몸을 관리하지 않아 가족들이 대신 힘들었는데 막상 돌아가시고 나니 마음이 왜 이리 답답한지 모르겠다.
좀 더 관심을 갖고 아버지 상태를 봤더라면 결과가 바뀌었을까. 계속되는 자책과 후회. 남겨진 가족들을 위한 자기 합리화가 하루하루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지켜야 될 남은 가족들이 있으니 힘내서 살아야 한다. 내가 살기 위해 남은 가족들이 살기 위해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들은 잠시 서랍 속 깊은 곳에 넣어두려 한다. 아버지의 그리움만 남겨둔 채.
“ 아버지 부디 다음 생에는 건강한 몸으로 태어나 하고 싶은 것 들 마음껏 하시고 그 곳에서는 아프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글/ 당건회원- 어니부기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