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에 발견한 당뇨.
작성일 : 2025.04.11 15:01

  경계선 지능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 나에게는 한 가지 장애가 더 있다. 언어 장애다.  하루는 복지 센터에서 얼굴을 보더니 당뇨가 있는 거 같다고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병원에 갔더니 당뇨입니다. 이렇게 20대 초반에 당뇨 환자가 되었다. 놀기도 좋아하고 남들 하는 취업도 알아봐야 하니 당뇨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심각성도 인지 못 했다. 병원에서 주는 약을 먹었지만 소화가 잘되지 않았다. 약도 싫었지만 인슐린 맞는 건 더 싫었다. 점심시간에 남들 모르게 화장실 가서 맞는 나 자신이 너무 싫어서 맞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인슐린 처방은 더 이상 하지 않으셨다. 약으로 만 관리했다. 아니 관리는 하지 않고 약만 먹었다. 본인이 당뇨 환자라는 생각은 하지 않은 체 생활했다.

 


 시간은 나에게도 흘러 삼십대가 되었고 이사도 했다. 물 좋고 공기 좋은 강원도로 이사를 하게 된 것이다. 다시 새로운 곳에서 취업을 해야 했고 적응하기 바빴다. 잊을 만하면 한번. 가뭄에 콩 나듯 혈당체크를 한 번씩 했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혈당이 나쁘구나 생각은 들지 않았던 수치였다. 그래서일까. 약도 먹고 있는데 몸이 이상하다. 그동안 당뇨가 있는데도 관리를 전혀 하지 않아서 일까. 화장실에서 쓰러졌다. 다리에는 온통 붉은빛이 돌고 가렵기도 했다.. 급한 데로 동네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혈당 체크를 하더니 놀라신 거 같다. 수치가 400이라며 소견서를 줄 테니 대학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소견서를 들고 찾아간 대학병원에서는 입원을 하라고 하셨고 인슐린으로 치료하고 퇴원을 했다. 약과 인슐린 두 가지가 처방되었다.
내가 지적장애가 있어서 일까. 언어장애도 있다 보니 몸에서 보내는 이상 신호도 감지가 잘 안된다. 아니 큰 문제가 될 것이라고 깨닫지 못하는 것 같다. 인슐린과 약물 복용으로 당과 혈당은 내려갔다가 올라갔다 반복이었다. 

 

  인슐린 잘 맞고 약만 먹으면 완벽하게 해결이 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6개월이 지나자 교수님이 호되게 혼을 내셨다. 인슐린도 맞고 있는데 살 안 빼냐고 돼지 되려고 이러냐고 충격적이었다. 고3 때부터 꾸준히 살이 쪄서 과체중인지 잘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음날부터 인슐린과 약을 먹고 있지만 추가적인 관리에 들어갔다. 운동과 식단도 추가로 했다. 일단 꾸준히 집 근처를 산책하며 돌아다녔다., 강원도라 그런지 공기도 좋고 집 앞 풍겨도 좋았다. 가끔은 시내에 있는 헬스장에 가고 싶기도 했고 혼자 걷는 시골 길이 심심하고 따분하기도 했다. 그 따분함과 지루함은 체중이 보상해 줬다. 사이즈가 77에서 66으로 변하고 있었다.“어 나도 되네.” 나도 뭐가 하니까 되는구나 싶었다. 처음 느껴보는 짜릿함 과 뿌듯함이었다. 운동을 가기 전 변하는 모습을 신발장 앞에 놓인 거울을 보고 사진으로 남기기도 했다. 사진 속 내 모습은 입꼬리는 하늘을 향해 올라가 있고 눈은 초승달처럼 작아져 있었다. 식단은 최대한 간식을 먹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밀가루가 들어간 빵과 면을 먹는 횟수를 최대한 줄이고 혹시 먹게 되면 운동을 추가적으로 더 해주기도 했다. 

 

  당뇨가 온 지 20년이 다 되어가지만 관리를 시작한 지는 삼년이다. 당과 혈이 좋을 때는 5점대 까지도 떨어지고 올라가기도 한다. 아직도 인슐린과 약이라는 보조제와 함께 하고 있지만 식단 조절과 운동으로 식후 혈당이 너무 예쁘다. 당뇨의 무서움과 심각성을 너무 늦게 알게 된 게 조금은 후회된다. 두려움과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울기도 하고 우울함도 찾아왔지만 관리한지 고작 3년. 앞으로 관리할 날이 더 많이 남았지만 오늘도 거울 앞에서 한번 웃으며 ‘나도 시작하면 뭐든 할 수 있는 사람이야’ 거울 속 자신에게 한 마디 던지고 산책을 나선다. 그리고 항상 출발 전 기도도 잊지 않는다. “우리 마을 약수터에도 운동기구가 생기길.” 마음속 간절함과 헛둘 헛둘. 앞으로 천천히 전진해 본다.

 

글/ 당건회원- 오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