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 입구에서 돌아온 지니"
작성일 : 2025.04.18 14:25

  외가 식구들은 당뇨, 고지혈증 등 대사증후군 관련 지병이 한두 개씩 있다. 아무래도 가족력인가 보다. 엄마도 당뇨를 30년째 약과 인슐린으로 관리 중이다. 엄마도 당뇨이고 외가 쪽도 당뇨 관련 질환이 있음에도 나와 연결 지어 생각하지 않았다. 몇 년 전 건강검진에서 공복 혈당이 100초반이라고 들었지만 관심조차 갖지 않았다. 공복 혈당과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5년 전 결과지에 대사증후군 이상 소견이 적어 있었던 게 기억난다. 비만이 아니기에 무시했다. 비만도 아니고 혈압도 정상인 나에게 대사증후군이란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다 생각했다. 이런 무심한 속에서 검진 결과가 들려왔다. 혈관의 나이가 50세라고 했다. "잉? 실제 내 나이보다 10살이나 높다고?." 혈관도 나이가 있나? 정신이 혼미하다. 나이 먹는 것도 억울한데 혈관의 나이는 실제 나이보다 더 많다고. 아니 높다고...  공복 혈당도 정상인 보다 조금 높고 혈관 나이도 실제 나이보다 높다고 하면 벌써 난 대사증후군 관련 질병에 다리를 두 개나 걸치고 있던 건데 한심하고 후회된다. 높다고 들었으니 관련 질병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알아봤더라면 좋았을 텐데.

 


  겨울이 가고 따듯한 봄이란 그런지 목덜미가 뻐근하고 피곤했다. 작년 봄은 유난히 그랬다. 뻐근함을 넘어 담도 자주 왔지만 단순히 피로 누적인 줄 알았다. 피곤함 속에서도 올해 건강검진 날은 어김없이 돌아왔고 결과도 나왔다. 이번 결과지를 받고 5년 전 결과지에 적어있던 그 단어가 "대사증후군이상" 소견이 머릿속에 나열되었다. 결과는 고혈압의 주의, 당화혈색소 6.5. 중증 지방 간인 지방 간염과 총 콜레스테롤 301. 간 수치는 정상수치의 두 배로 높다고 결과지에 적어져 있었다. 몸이 나른해지는 봄이라서 피곤하고 뻐근한 게 아니고 혈액순환이 잘 안되어 몸에서 보내는 신호였다. 왜 몰랐을까. 정말 눈치가 없는 여자다. 짧은 시간 동안 후회와 아쉬움을 뒤로하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의사는 책상 위에 얻은 손가락을 까닥 거리다 말했다. 당뇨 판정 기준 수치가 6.5다 그런데 딱 커트라인이다. 일단 약 없이 식단과 운동으로 수치를 한번 내려 보자고 말했다. 운동은 쉽지 않겠지만 매일 빠지지 않고 해야 하며 식단이 가장 중요한데 할 수 있겠냐고 물어봤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한번 해보겠다고 약속을 하고 병원을 나왔다. 운동은 알겠는데 식단은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적게 먹으라는 소리인지 다이어트 식단으로 먹으면 되는 것인지 막막했다. 매일 걷던 길인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평소와 다르게 멀게만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인지 발걸음도 천근만근이다. 저녁을 먹고 침대에 누웠는데 잠도 오지 않고 유난히 오늘 밤은 적막하다. 눈을 감아도 천장을 올려다봐도 막막하고 무서웠다. 그저 물음표만 보이는 것 같다.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인터넷으로 정보를 찾기 시작했다. 당뇨 관련 정보도 있지만 커뮤니티도 발견했다. 맘 카페와 비슷한가 싶어 가입했다. 당뇨 관련 정보도 있고 사람들의 식단과 운동법도 있었다.

 

 

  하루의 시간을 다른 사람들의 식단과 운동법을 보면서 메모하고 꼼꼼히 읽어보면서 보냈다. 관리하는 사람들의 글을 읽다 보니 젊고 비만이 아니라는 이유로 몸을 돌보지 않았던 과거의 모습이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다. 머릿속은 둘로 나눠졌고 그 안에는 후회와 자책, 한쪽에서는 계획과 실천이라는 단어로 전투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식습관 개선에 들어갔다. 커뮤니티 다른 회원들의 식단을 참고해서 나만의 식단을 만들어 봤다. 아침은 간단하게 과자와 커피로 먹던 습관은 양배추, 채소 믹스, 베리류, 토마토 등 채식으로 바꿨다. 대부분 혼자 먹기에 국수나 빵을 먹으며 배만 채우던 점심은 잡곡밥과 신선한 채소, 단백질이 골고루 들어간 반찬으로 준비해서 먹었다. 저녁은 온 가족이 함께 먹는 시간인 만큼 반찬은 건강식으로 꼭 직접 만들어 먹기로 다짐하면서 양념장 서랍도 점검에 들어갔다. 식용유는 올리브유로, 설탕이나 조청 같은 당분류는 대체당으로 바꿨다. 간식과 음료수도 먹지 않았다. 하루하루 지나면서 우리 집 식탁은 배달이나 간편식과 멀어져 갔다.

 

 

  처음이 힘들지 시간이 지나니 건강한 식습관도 버틸만했다. 저녁 8시 이후에는 물 빼고는 먹지 않아 배고팠지만 이런 습관도 두 달쯤 되니 적응 완료. 간식도 더 이상 생각나지 않았다. 역시 적응하기 나름인가 보다. 변화는 식습관뿐 아니라 생활습관까지 이어졌다. 식사를 마치고 소파 위에서 TV를 시청하거나 눕던 내가 간단하게 집안을 하고 의식적으로 나가서 걸었다. 처음에 40분 정도 걷던 산책도 점차 늘어났다. 늘어난 건 시간뿐 아니라 운동하는 횟수도 많아져 하루 걷는 총 걸음수가 2만 보가 넘었다. 유산소에 집중한 덕인지 체지방이 줄고 몸무게도 4킬로나 빠졌다. 비만은 아니지만 bmi 지표는 항상 표준과 경계선 끝자락에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체지방도 줄고 체중 감량 덕에 정확하게 표준 가운데를 가리켰다. 좋아진 건 또 있었다. 혈압과 당화 혈색도 짜 맞춰진 거처럼 안정권으로 들어왔다. 자칫 대사증후군 관련 쓰리고를 찍을뻔했던 고지혈증까지 좋아지는 게 보였지만 간 수치는 아직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병원에서는 지방간이 워낙 심해서 정상수치까지 1년 정도 관리를 하며 보자고 한다. 모든 게 한 번에 좋아지면 좋겠지만 욕심을 조금 내려놓기로 했다.

 


  몸 관리에 충실한 만큼 시간도 빠르게 흘러만 갔다. 6개월 만에 찾아간 병원 검사에서 약 없이도 당화혈색소 5.3이라고 칭찬을 들었다. 의사는 정상체중이지만 지금 관리법으로 계속하면 자칫 마른 당뇨로 변할 수 있으니 되도록 간식과 단백질 섭취를 잘 하라고 했다. 운동법은 이제 유산소보다는 근력운동에 집중할 것을 권했다. 여러 가지를 한 번에 바꾸다 보니 쉽지는 않았은 시간이었다. 어쩌면 가족력으로 남들보다 빠르게 온 당뇨지만 더 늦지 않고 심각하지 않았을 때 알게 된 것에 감사하며 나에게 건강관리 경각심을 일깨워 준 당뇨가 때론 고맙기도 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퇴근 후 힘들 텐데 말없이 묵묵히 함께 나가서 걸어준 나의 영원한 동반자 영감탱이, 바뀐 밥상에 투정 한번 없이 먹어준 두 남매가 있어 가능했을 것이다. 나의 버팀목과 원동력이 되어준 사랑하는 가족들 커뮤니티에서 만난 회원들의 응원과 격려들이 모여 엄청난 에너지로 작동한 것이다. 이런 응원과 에너지를 받아 나는 오늘도 소망해 본다. 꾸준히 할 수 있는 내가 되겠노라고.

 

글/ 당건회원- 지니의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