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나에게 말했다."네가 당뇨 걸린 게 다행이라고."
작성일 : 2025.04.21 00:01

  날씬한 적이 있던가. 아니 뚱뚱하지 않았던 적이 있던가라고 질문을 받는 게 대답하기 수월했던 거 같다. 어렸을 때부터 소아비만이었다. 비만이라는 아니 뚱뚱하다는 이유로 학창 시절에도 친구들에게 이유 없는 따돌림을 당하기도 놀림감이 되기도 했다. 어릴 적 엄마와 함께 시장 가는 것도 걸어가는 게 괴로워 바닥에 주저앉아서 울고 했다. 그게 어릴 적 나의 모습이다.  20대가 되고 사회에 나와 자극을 받아 다이어트를 결심했다. 결심의 이유는 기억이 안 나지만 치열하게 다이어트를 했다. 유행하는 다이어트 방법을 따라 하면서 성공과 실패를 겪었다. 이런 반복적인 현상으로 요요가 꼬리표처럼 따라붙었고 몸과 마음에는 고름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120킬로까지 육박했던 몸과 마음은 잦은 요요현상으로 누가 건드리면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은 유리 멘탈이 되어 버렸다. 자존감은 바닥으로 자꾸 스며들었지만 예전보다 날씬한 외형을 보면서 겨우 80~90킬로를 유지하면서 지냈다.

 

 

  다이어트에 쓴 물을 먹고 지내는 나날 속에서 건강검진을 받았다. 특별한 이상 소견은 없었지만 당뇨라고 했다. 의사는 진지하게 말했다. 정말 운이 좋게도 당화혈색소 6.6으로 초기에 발견된 것에 감사하라고. "살을 빼세요." 라는 짧은 말과 함께 처방이 내려졌다.  지금 당장 살을 빼고 관리를 한다면 충분히 좋아질 수 있다고.  성공과 실패를 계속 맛보고 있는 다이어트를 다시 시작해야 했다. 지금까지는 예쁜 옷을 입고 외모 지향을 위한 다이어트였는데 이번에는 외형적인 모습이 아닌 오직 건강한 삶을 위한 다이어트다. 같은 다이어트인데 받아들이는 기분이 아니 마음가짐이 달랐다. 기존에는 하다가 요요가 오면 “아 몰라~” 지금까지도 이렇게 살았는데 몰라 몰라를 외쳤다면. 지금은 이거 당장 빼지 않으면 아플지도 모른다.  심각한 당뇨가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참에 살이나 독하게 빼 보자 싶어서 굳은 결심을 했다.

 

  당뇨에 지식이 없었기에 그저 예전처럼 살만 빼면 된다고 생각했다. 탄수화물을 극단적으로 절식하며 야채 위주의 식사만 고집했다. 살은 잘 빠졌고 몸은 거의 반쪽이 되었다. 내 몸에서 성인 여자 하나가 빠져나갔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른다. 배고픔이 몰려올 때마다 외쳤다. 아니 체면을 걸었다. 당뇨가 오고 있다. 아니 당뇨가 왔다. 배고픔이 문제가 아니니 정신 차리고 살 빼야 된다. 다이어트와 당뇨관리 4개월쯤 지났을 때 당뇨에 대한 정보를 좀 더 세밀히 알고 싶어졌다. 이것저것 검색하다가 '당뇨와건강'이라는 커뮤니티를 알게 되었다. 당뇨 정보뿐 아니라 생활습관 관리 식단 운동 등 다양한 정보가 있었다. 신기한 곳이었다. 카페에서 정보를 보다 보니 다이어트와 당뇨인의 비만 다이어트는 조금 달랐다. 절식이 맞긴 하지만 식단이 조금 달랐다. 극단적으로 탄수화물을 한 번에 줄이는 방법이 좋지 않다는 글을 봤다. 살은 잘 빠지겠지만 나중에 탄수화물에 민감한 몸으로 변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체중 감량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는데 새로운 정보를 알게 되었다. 다른 회원들의 성공사례, 카페 회원들의 의견을 듣고 플랜을 다시 만들었다.

 

 

  벌써 6개월이 지나갔다. 실패도 요요도 아직 오지 않았다. 반쪽짜리 몸이 된 난 입을 옷이 없어졌다. 사실 나이에 맞지 않게 엄청난 자린고비다. 돈 버는 거, 모으는 거 외 세상을 무미건조하게 살아왔는데. 은혜롭게도 당뇨가 찾아와 새로운 삶을 준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어쩌면 바닥난 자존감도 한몫했을지도 모른다. 일면식도 없는 온라인상 알게 된 사람들을 만나 돈을 쓰면서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등산을 가고 식사를 함께 하고 걷기 모임도 참여했다. 내 인생에 등산이란 단어도 아니 경험을 하게 되었고 모르는타인과 밥도 먹었을 줄 몰랐다. 즐거웠다. 예전에 내성적이고 남의 눈을 의식하면서 만나지 않고 지금 모습으로만 봐주는 그 사람들이 좋고 편했다.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 헐떡이던 이연희는 없다. 사라졌다. 바람과 함께 사라진 게 아니고 몸에 붙어 있던 살들과 증발해 버렸다. 3층 계단만 올라가 도서 갖은 짜증을 부렸던 모습은 사라지고 20층 아니 30층까지도 쉬지 않고 잘 올라갔다.  

 

 

  체력이 늘어난 만큼 살도 잘빠졌다. 식단 위주의 다이어트는 과거와 함께 묻었다. 당뇨는 식단과 운동이 함께라고 했다. 어차피 살을 못 빼면 당뇨가 심각해질 것이라는 생각으로 철저한 식단, 혈당도 잡고 실패 없는 다이어트를 위해서 운동을 빼먹지 않고 했다. 그동안 요요를 수없이 겪어 왔는데 기존과 다르게 요요는 오지 않고 있다. 거울을 보고 체중을 체크하면 웃음이 난다. 가능하다니. 너무 뚱뚱해서 어린 시절부터 비만이었기에 안되는 줄 알았다. 이런 이유로 타인과 다르게 요요가 더 잘 오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틀렸다. 과거의 이연희가 잘 못된 방법으로 했던 것이다. 

 

 

  어느 때와 같이 저녁을 먹고 혈당 내리기 운동을 하고 있는데 엄마가 넌지시 말했다. "엄마는 차라리 네가 당뇨에 걸린 게 다행인 것 같다고." 다들 이게 무슨 말이냐, 엄마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하는가 할 수 있겠지만. 하나뿐인 딸이 지금껏 비만으로 예쁜 원피스도 입지 못하고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있다면 다를 수 있다. 엄마의 평생소원 중 하나가 딸이 날씬해져서 한껏 멋도 부리고 예쁜 원피스에 구두를 신는 그저 평범한 딸의 모습을 보는 것이다. 과거의 모습과 달리 요요 없이 잘 유지하고 있는 딸이 엄마는 그저 신기하고 대견한 모양이다. 비로소 엄마의 소원의 80%는 이루어진 것 같다. 아직 진행형이지만. 반년이 지나도 지치지 않고 꾸준히 하고 있는 나도 내가 대견할 뿐이 깐. 나에게 당뇨란 이렇게 말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건강하고 예쁘게 살 수 있는 기회를 가져 보란 게 아닐까. 실패와 좌절감이 밀려와도 이번만큼은 지지 말고 꼭 승리하라고. 땅속으로 사라졌던 자존감도 조금씩 꺼내면서 이연희를 사랑하는 내가 되고 싶다. 몸도 마음도 건강한 내가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내가 되길 간절히 바라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연희야 알지. 지금도 앞으로도 넌 잘 할 거야.


글/ 당건회원- 연희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