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당뇨를 관리하고 생각하면서 지낸 세월이다. 관리를 꾸준히 하고 나름의 루틴을 만들어 지내고 있지만 관리 뒤에는 항상 물음표가 생긴다. 끝이 보이지 않아서 일까. 이런저런 생각이 많지만 노력하지 않고 끈을 놓는 순간 그 결말이 비참해진다는 걸 알기에 난 오늘도 달리고 있다.
2008년 11월. 당화혈 11.5, 첫 검사 공복 혈당 394 이 숫자는 평생 기억에 남을 것이다. 유난히 숫자에 약하지만 잊어지지 않는다. 친가, 외가 당뇨병 있고 유전적 소인도 있다. 흐릿한 기억이지만 30대 초반 국가검진에서 공복 혈당 104~110대였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 체중도 78, 80킬로 정도, 시간과 기회만 생기면 음주 즐겼다. 아니 폭주를 즐겼다. 생각해 보면 30대 초반부터 당뇨 전단계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술이 좋았고 젊음을 무기 삼아 건강관리에 관심도 없었다. 그 나이 때 남자들은 그랬던 거 같다. 당장 진단이 내려지지 않으면 경각심이라는 게 잘 안 생기는 나이가 아닌가 싶고 나 또한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왜 골든타임을 놓쳤을까 후회는 되지만 시간을 되돌릴 수가 없으니 자책감만 남는다.
사업을 시작하고 결혼 후 아이도 생겼다. 먹고살려고 열심히 뛰어다니고 달렸다. 평범한 여느 가장들처럼 나의 삶도 변해갔다. 가장으로 사업주로 충실히 살고 있는데 몸은 점점 무거워졌고 숙면을 취해도 피곤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당뇨 증상 중 다뇨, 갈증 증상이 다 있었다. 하지만 진단받기 전까지는 당뇨라고 생각도 못 했다. 증상이 점점 심해져 검진을 받아 봤는데 당뇨라고 했다. 진단을 내리고 설명은 아주 간단했다. “당뇨이니까 약 드시고 관리하세요.” 이게 전부였다. 원인이나 관리에 관한 설명도 없었다. 요즘처럼 당뇨전문 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진단을 받았다면 조금은 달라졌을까 싶다. 진단 시 수치를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약이 아니고 인슐린을 처방받고 관리했다면 오히려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진단과 함께 시작된 당뇨관리. 경구용 혈당강하제 등 여러 가지 약들을 의사와 상담하고 바꿔 보고 먹어 봤다. 약뿐만 아니라 병원도 여러 곳을 돌아다녔다. 약의 기전, 장/단점, 부작용도 겪어보면서 경험으로 공부가 되었던 것 같다. 역시 당뇨는 약을 먹는다고 완벽하게 좋아지는 건 아니었다. 도움이 되는 건 사실이지만 적게 먹고 운동을 열심히 하는 것만큼 좋은 약은 없었다. 진단받은 초기에는 열정에 비해 혈당이 잡히지 않아 고민스러웠지만 시간이 해결해 줬다. 노력과 시간의 싸움인 걸 알아가는 여정은 힘들었지만 노력의 대가는 반드시 찾아왔다. 3개월마다 진행하는 검사는 시험 보는 기분을 떠올리게 했다. 점점 내려가는 수치는 노력의 대가를 증명해서 알려줬다.
시간이 지나니 자연스레 긴장이 없어지고 있다. 관리가 조금 느슨해지니 외할머니가 종종 잔소리를 하셨다. “너는 입이 달아서 문제야.” 느슨해짐과 동시에 잠잠하던 욕구가 폭발했다. 식사량이 늘고 주전부리를 시작했다. 술 또한 다시 즐기고 운동을 빼 먹는 날도 빈번했다. 약이 떨어져 병원에 가야 하는데 검사 결과를 보고 의사 잔소리나 꾸중이 싫어서 안 가는 날의 빈도가 늘었다. 초반의 의욕과 열정은 식욕과 함께 없어졌다. 그러다 정신 차리고 관리하고 수없이 반복했다. 그땐 몰랐다. 몸에 데미지를 누적하고 있다는 사실을. 힘껏 당겼다가 힘없으면 그대로 쭉 밀리는 날들. 그걸 15년 동안 반복하고 있었다. 노력은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처럼 몸도 관리하는 만큼 티가 났다.
병원에서 한 번씩 인슐린에 대한 언지를 주셨다. 그것이 내 이야기인 줄 몰랐다. 작년에 피검사를 하고 의사는 인슐린을 권했다. 왜. 당황스러운 건지 놀란 마음에 의사에게 당신이라는 호칭까지 내뱉었다. “뭐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냐고.” 중간 중간 관리를 안 한 것은 인정하지만 당화혈색소 수치 8. 일 년 뒤 7. 느리지만 떨어지고 있는데 왜 라고 반문했다. 의사는 내 기분과 달리 차분히 설명을 이어갔다. “이전 수치들과 비교해 봐도 저항성도 커지고 인슐린 분비 기능도 낮아졌다고. 그러니 맞으셔야 해요.” 가 아니고 맞으라고 짧지만 강한 어투로 말했다.
인슐린은 하루 한 번 맞는 지속형으로 12단위가 처방됐다. 혈당 수치 생각 말고 정해진 단위만 맞으라고 강조했다. 인슐린 처방이 싫었을까. 당황스러웠던 건지 소모품 처방전 및 인슐린 교육도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왔다. 와이프에게 먼저 연락해 결과를 전달하고 당뇨 친구인 아버지와 장인어른께도 말씀드렸다. 아버지는 인슐린을 맞고 계시기에 유선으로 설명을 해주셨다. 약 봉투를 들고 집으로 돌아와 냉장고에 처박듯 던져놨다. 저녁에 곧장 음주를 즐기고 달렸다. 며칠이나 지났는지 모를 인슐린을 꺼내서 맞았다. 첫 인슐린을 맞는 느낌은 비참했다.
인슐린과 함께 다시 시작된 관리. 인슐린을 맞으니 그동안 느껴 본 적 없던 저혈당이 수시로 왔다. 공복을 내리기 위해 저녁에 인슐린을 맞으니 새벽에 저혈당으로 자주 일어났다. 수면 중 저혈당은 위험해 병원에 문의 후 아침에 맞는 것으로 변경했다. 인슐린과 당뇨약으로 관리 한지 3개월이 지나 수치가 6.2로 떨어졌다. 내려갔으니 인슐린 투약을 중단할 것이라는 나의 계산은 틀렸다. 수치가 5점대를 유지해도 맞아야 한다고 했다. 이유는 나이도 있고 유병 기간이 길어져 인슐린 나오는 양도 적고 줄어드는 게 보인다고 했다. 분명 아이템이 하나 생겨 관리가 수월해진 것도 인지하고 줄어드는 것도 아는데 여전히 인슐린에 대한 거부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의사는 유연하고 편한 관리를 해라 식사량도 절식 말고 똑같이 먹으라고 사회생활을 하니 술을 안 마실 수는 없고 운동도 빠지는 날이 당연히 생긴다. 본인 인생의 질이 있으니 마인드를 바꾸라고 했다. 맞다. 어찌 365일 관리를 철저히 할 수 있을까. 동굴 속에서 혼자 산다면 가능할까. 인생이 내 맘대로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인슐린을 맞으니 혈당 관리는 편했다. 게임 아이템을 하나 들고 시작하는 기분이다. 게임 유저가 컨트롤이 용이해지고 속도가 빨라지며 능력치가 상승하는 느낌이다.
아이템이 있지만 매일 반복이다. 건강한 당뇨 관리를 위해 각성하고, 노력하고, 기록하고, 습관이 되도록 말이다.
글을 마무리하며 경험으로 느낀 당뇨에 관한 생각과 의견을 몇 자 적어본다.
1. 전단계는 당뇨 확진을 늦추려 철저히 관리하고 노력하라.
2. 당뇨는 완치가 없다. 하지만 완치에 가까운 근치를 목표로 생각해 보자.
3. 당과 혈 수치 9.5 이상이면 하루라도 빨리 인슐린 치료를 시작해라.
빠른 처치는 모든 면에서 유리함이 많다.
4. 단약은 관리의 훈장이지만 시작되면 많은 각오하고 관리해야 한다.
5. 움직이지 않고 노력하지 않으면 혈당은 솔직하다.
6. 체력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매일 습관들이면 좋다. 절식, 운동, 약물.
7. 당뇨 일기를 써라. 기록하라는 뜻이다.
8. 운동은 유산소, 무산소 근력 등 고민하지 말고 해라. 뭐든 땀 빼고 움직이면 된다.
9. 비만 당뇨는 축복이다. 살을 빼라. 혈당이 증명해 줄 것이다.
10. 당뇨인임을 절대 숨기지 말아라. 자랑할 일은 아니지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인생에서 가장 큰 후회라면 내가 “당뇨인”이라는 사실이다. 허나 기쁨도 있다. 당뇨를 이기기 위해 매일 노력한다는 것. 당뇨는 똑같은 거 같다. 스스로 부끄럽지만 않으면 된다.
오늘 또 내일의 떠오르는 태양과 마주하는 하루다. 모두 여유 있는 당뇨 생활이 되길 빌며 갈무리해 본다.
글/ 당건회원 - 내남자의 로맨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