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을 울린 어느 저녁 날
작성일 : 2025.06.30 11:56

 저녁 약속이 있던 날이다. 약속 시간보다  빨리 도착해 건물 지하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핸드폰을 들었다. 옆에 있던 차에서 운전자가 내리더니 다른 곳에 주차하면 안 되는지 물었다. 순간 황당해 미간에 힘이 들어갔다. 건물 주차장이 개인의 것도 아닌데 이동을 해라 마라 말하는 게 기분이 상했다.  내키지 않았지만 실랑이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알았다” 대답하고 그 옆 칸으로 주차를 했다. 시간이 남아 차 안에서 음악을 듣고 있는데 휠체어 한 대가 차 앞으로 오고 있다. 고등학생쯤 돼 보이는 학생이 앉아있고 뒤에서 중년의 아주머니가 밀어주고 있는 게 엄마 같아 보였다. 손에도 휠체어에도 미술 도구가 들려 있는 거 보니 미술 학원을 다녀온 모양이다. 휠체어로 대중교통이 불편하니 아까 나에게 양해를 구했던 아빠가 데리러 온 거 같다. 앉아있는 학생을 아빠가 안아서 옮겨주는 거 같은데 아빠 품에 안기자마자 울음을 터뜨렸다. 학생의 흐느낌이 고요한 주자창에 울려 퍼지고 있다.

 

 

 어디까지 추측이지만 장애를 가지게 된 지 얼마 안 된 거 같다.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익숙하지 않은 모습을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울고 있는 아이 너머로 보인다. 아이를 안고 입술을 악물고 있는 아빠를. 말하지 않아도 느껴진다.  눈물을 참고 있는 아빠의 모습이.  얼마나 함께 울고 싶을까. 얼마나 슬플까. 함께 손잡고 꺼이꺼이 울고 싶지만 약한 모습을 아이에게 보여줄 수 없어서 참고 있는 아빠의 모습. 입술까지 파르르 떨려 보인다. 한참 울던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다 울었던 모양이다.  아이의 얼굴을 보면서 환하게 웃고 있는 아빠의 모습에 나는 한번 더 놀랐다.  가능한 일인가. 최선을 다해서 슬픔을 감추려는 아빠의 모습에 코 끝이 찡해졌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인데 눈물이 흘렀다. 입술을 악물고 참으면서도 아이 얼굴을 보면서 환하게 웃었던 아빠. 변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그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나도 자식이 있는 아빠라서 그런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눈물을 못 참는 성격이라 흐르는 눈물까지는 막지 못했지만 입술을 반사적으로 깨물었다.  흐느끼며 울던 아이도.  눈물을 삼키며 참던 아빠도 주차장을 떠났다. 그 아빠는 아이를 집에 내려주고 엉엉 울지 않을까 싶다.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차를 보면서 문득 생각했다.
건강하게 잘 자라준 우리 아이들에게 고마움이 없던 거 같다. 건강하게 잘 키워주신 부모님에게 나 또한 감사함을 몰랐던 거 같다. 그저 내가 잘 해서 이렇게 산 것이라고 생각했다. 가족에 대한 고마움 소중함을 알려준 휠체어 탄 학생과 아빠의 모습을 보고 짧지만 강한 시간을 가졌다. 
아프지 아니 함에 감사하고 사고로 인한 다치지 아니 함에 감사하다. 생각해 보니 감사할 일이 너무 많은 거 같다. 아무 이벤트 없이 무사히 퇴근하고 집으로 귀가하는 것도 감사하다.

 

 당뇨 진단을 받고 바뀌어 버린 일상에 불편함만 호소 했다. 생각해 보니 합병증 없이 지내는 것도 건강하게 관리할 수 있게 지내는 것도 감사하다. 작고 소소한 일상도 이리 감사한 일들이 무수히 많은데 당연하게 생각 하면서 지냈던 나.  그저 내가 잘해서 아무 일 없이 지낸다고 생각하는 나 자신이 이기적인 건 아닌지 생각이 드는 저녁이다. 
 

글/ 당건회원- 티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