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업무를 보고 있는데 동료가 얼굴을 유심히 보면서 한마디를 한다. 관자놀이 부분이 튀어 나온 게 심상치 않으니 병원 한번 가보라고 했다. 몸에 이상 있는 게 아니냐며 걱정스럽게 바라봤다.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있었는데 그 말을 들으니 유독 툭 튀어나와 보인다. 신경 쓰임 김에 병원에 가서 CT도 찍고 피검사도 했다. 관자놀이 부분에 튀어나온 건 이상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피검사 결과지를 한참 살펴보더니 내분비과로 가보라고 했다. 이유를 모르고 방문한 내분비과에서는 당뇨, 고혈압, 고지혈을 나에게 진단 했다. 흔히 우리가 말하는 쓰리고를 맞았다. 당뇨 증세가 전혀 없었기에 황당했다. 171cm의 키 체중 88kg. 과체중인 건 알고 있지만 무슨 진단이 한번에 쏟아지나 싶었다.
할머니께서 당뇨를 앓고 있었기에 어린 시절부터 봐왔다. 합병증으로 고생하시는 할머니를. 당뇨가 얼마나 무서운 질병인지 어린 나이부터 지켜본 나는 잘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당뇨가 심해서 시력도 안 좋아지시고 약과 인슐린을 함께 병행하며 지내왔다. 어릴 적 할머니의 손을 잡고 시장에 가려고 하면 피부가 벗겨지고 피가 나고 고름이 나기도 일쑤였다. 그런 걸 보면서 자라왔는데 내가 당뇨라니. 공포감이 몰려왔다.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니 머릿속이 하얗다. 어릴 적부터 엄마는 종종 당뇨 조심해라. 과자, 술을 너무 좋아하는 나를 보면서 노심초사해 하셨다. 걱정과 잔소리를 그렇게 많이 들었는데 당뇨 진단을 받다니. 할머니는 당뇨지만 부모님이 아니기에 상상도 못 했는데. 고민 끝에 당뇨 진단을 받았다고 엄마에게 말씀 드렸다. 엄마는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라고 하신다. 당뇨 진단도 서러운데 불효를 저지른 거 같아 마음이 좋지 않았다.
마음이 무겁다. 피검사 결과를 보면 더 처참하다. 꼭 시험 보고 틀린 답을 적어낸 것처럼 빨간색 글씨가 많다. 공복 혈당 229. 당화혈색소 9.6. 고혈압210. 비만까지. 빨간 글씨가 많은 만큼 몸이 안 좋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일주일에 3~4일 음주를 즐기고 운동이란 것을 한 적도 없는 나에게 당연한 결과였다. 그동안 젊음을 무기 삼아 즐기기만 했구나. 내 몸을 돌보지 않았구나 뼈저리게 느끼는 시간이었다.
진단 받은 날 병원에서 수치를 알려주면서 의사는 “투석 하기 싫으면 당장 운동해라.”라고 말 했다. 식단 조절은 당연하고 설명 보다는 명령을 전달 받은 느낌이다. 운동은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혼란스럽고 어지러웠다. 독해져야 했고 정신을 차려야 했다.
운동을 모르고 살았기에 혼자 할 수 있는 줄넘기를 먼저 시작했다. 독하게 마음을 먹고 살을 빼기 위해서 평소 보다 밥 양도 줄였다. 다시는 이런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기에 “할 수 있다” 최면 걸듯 주문을 외우듯 운동에 전념했다.
결심을 하고 제일 먼저 나타난 성과는 체중이 줄었다. 살이 빠지니 피곤함도 덜 느끼고 아침에 일어나면 개운했다. 감량 후 가장 먼저 고지혈증이 좋아지고 혈압도 좋아졌다. 줄어든 살만큼 약도 줄어들었다. 줄어든 약과 낮아진 수치, 체중까지 삼박자가 잘 맞으니 당뇨를 이긴 거 같은 기분까지 들었다. 기쁨과 함께 찾아온 피검사 결과. 당화혈색소 5.5.! 순간 너무 기뻐 소리를 질렀다.
앞으로도 운동과 식단을 꾸준히 할 예정이다. 당뇨는 평생 관리하는 병이지만 지금처럼 꾸준히 한다면 단약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단약은 새로운 관리의 시작이라고 하지만 열심히 한 나의 노력의 결과라는 생각이 있기에 도전해보고 싶다.
처음에는 두렵고 방법을 몰라 힘들었다. 또 합병증이 걱정되는 부분이 있었지만 본인의 의지로 충분히 이길 수 있으니 우리 모두 두려워 말았으면 한다. 당뇨, 조금 불편할 뿐 나의 건강을 다시 돌보게 해준 하늘에서 내려준 천사라고 믿고 싶다.
글/ 당건회원 - 이겼다대사증후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