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당뇨란 새로운 삶이다.
작성일 : 2025.07.27 00:29

아침부터 인사팀 팀장님의 호출이다. 얼굴이 어둡다. 순간 머릿속에서 필름을 돌렸다. 회식 자리 때문인가 아니면 어제 결재 서류 때문인가 모르겠다. 계속 빤히 바라보는 팀장님 때문에 손에 땀이 났다. 망설이던 팀장님은 건강검진 결과가 나왔는데 지금 이 상태면 휴직계 내고 병원에 입원해야 한다고 했다. 결과가 너무 안 좋으니 연계병원에서 회사로 연락이 온 모양이다. 당장 병원으로 가라고 하는 팀장님한테 건성으로 대답만 했다. 쓰러진 것도 아니고 스스로 자각도 안되는데 병원을 가라니.  병원 갈 시간도 돈도 없다.

 

 

업무의 연장선이 오늘도 어김없이 시작됐다. 회사가 끝나고 나면 신랑과 새벽 2~3시까지 대리운전을 했다. 피곤해서 쓰러질 거 같아도 해야 했다. 두 탕을 뛰어도 해결이 안 되는 돈 문제가 시급한데 병원 갈 돈이며 시간이 어디 있겠는가. 배부른 소리다. 정확히 일주일 뒤 병원을 가지 않는 나를 보고 인사팀 팀장님한테 지시가 내려왔다. 당장 결과지 들고 병원으로 가라고 그 말과 함께 직원이 따라왔다. 병원을 가지 않을까 봐 인사팀 직원을 동행 시켰다. 멍한 마음으로 간 병원에서는 진료도 다양하게 봐야 했다. 내분비내과, 소화기내과, 심장내과. 회사 제휴 병원이라서 그런지 이미 접수도 끝난 모양이다. 생활이 여유가 없어서 결과지조차 확인하지 않았는데 당화 혈색소 10.9, 공복 혈당 288, 고혈압, 지방간 수치가 높다고 했다. 간 수치가 너무 높아서 복용 가능한 약도 많지 않으니 인슐린을 맞게냐고 물어봤다. 사실 입원해서 봐야 하는데 입원이 어려우면 인슐린을 맞으면서 췌장을 좀 쉬게 하자고 한다.

 

고민도 없이 대답하는 나를 의사가 신기한지 한참 바라봤지만 워낙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그런지 상황 인식도 안되고 심각한지도 몰랐다. 와닿지가 않았다. 병원에서 돌아와 남편한테 이야기했더니 타격감 없던 나와 다르게 호들갑이다. 정작 당사자인 난 내 몸 걱정할 여유도 우울할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이렇게 난 인슐린으로 치료를 시작한 당뇨인이 되었다. 인슐린을 맞으면서 관리도 열심히 하고 혈당도 안정되면서 인슐린을 중단했다. 안 하던 운동을 해서 그런지 족저근막염이 왔다. 잠시 운동을 쉬어야 한다고 해서 운동을 쉬게 되었는데 괜찮을 때까지만이라고 생각했던 마음이 사라지고 긴 시간을 쉬었다. 혈당이 낮아졌으니 괜찮겠지 괜찮을 거야라고 생각하며 관리의 끈을 놓았다. 잠시만 쉬자는 마음은 원래 과거의 나로 돌아가버렸다. 다시 오른 당화혈색소. 낮추기는 힘들지만 오르는 건 한순간이었다. 수없이 해봤던 다이어트와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들게 빼고 치팅데이 한 번으로 원점이 되는 다이어트와 똑같은 결과다.

 

 

다시 관리를 시작 하려고 당뇨 관련 커뮤니티에 출석을 했다. 혼자 관리하는 것보다는 위로도 받고 공감해 주는 사람들이 있어 좋았다. 커뮤니티에서 진행하는 이벤트도 여러 번 참여했다. 처음에는 호기심에 시작했는데 걷다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걸어봤다. 만보도 겨우 걷던 내가 2만보 달성. 3만보 달성. 5만보 달성. 인간 승리다. 이렇게까지 나도 걸을 수 있구나 싶었고 난 평균 5만보는 걸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신기하고 스스로의 한계를 극복한 것 같아서 행복했다.  하루는 커뮤니티에서 이벤트가 생겼는데 주제가 “나에게 당뇨란?”이다. 퇴근하고 걸어가면서 생각해 봤다. 무엇일까. 고민하다 보니 과거와 너무 달라진 내 모습이 생각났다. 아. 나에게 당뇨란 “새로운 삶”이구나 싶다. 당뇨가 왜 왔는지 내가 왜 걸렸는지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지만 엉망인 식습관, 폭식, 스트레스로 인한 폭음, 금전 사고를 해결하겠다고 무리하게 움직인 결과 일 것이다. 운동 부족도 한몫했을 것이다. 절대 걸어 다니지 않았던 나. 지금은 내가 5만 보씩 걷는다 아니 그 이상도 걸어봤다고 가장 친한 친구한테 말했더니 안 믿는다. 솔직하게 말하면 나보고 미친 소리 그만하고 끊으라고 했다. 안 믿는 게 당연하다. 도보 10분 거리도 차를 타고 다녔던 나였기에 당연한 반응이다.

 

  당뇨, 다이어트, 인생도 결국 같다. 습관 개선이 답이었다. “오늘 하루는 괜찮아. 괜찮아”. 가 쌓이고 쌓여서 결국 몸도 마음도 힘들어진다는걸. 누구보다 “나”를 잘 아는 건 ​본인이다. 스스로 절제하고 조절하지 않으면 건강도 인생도 최악의 길로 간다. 습관 개선이 답이다. 돈을 모으려면 소비 습관을 바꾸고 주변과 돈거래를 하지 말아야 하며 당뇨 관리 아니 건강 관리를 잘 하려면 식습관, 운동을 꾸준히 해야 했다. 지나치지 않을 만큼의 긴장감과 하나씩 시작하는 작은 습관의 개선이 건강 관리의 시작이 아닌가 싶다. 단 한 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회사 검진 결과를 자세히 보지 않았다는 거. 젊다고 다 건강한 게 아니다. 뭐든 적당히 술도 음식도 운동도 인간관계도.

 

 글을 마무리하면서 소망해 본다.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은강. 그리고 당뇨 환우 분들.우린 그냥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자. 기존에 있던 편했던 습관들은 좀 내려놓고가볍게 걷기부터 시작해 꾸준한 운동, 좋아했던 음식량은 조금 줄이고 노력해 보자. 여러분 저를 보세요.! 10분만 걸어도 곡 소리 내면서 차를 타고 다니던 제가 회사에서 집까지 10킬로를 걸어서 가고 챌린지를 한다고 하루 5만 보, 7만 보를 걸었습니다. 관리하는 지금은 간 수치도 정상이고 다리의 근육을 더 붙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마 우리 회사 내 당뇨인 중 가장 건강하다고 자부한다. 여직원 중 최초로 재검을 받았던 은강이지만 지금은 아니다. 은강아 지금처럼 네가 가장 하기 싫어하는 걸 열심히 하면서 지내길 소망해 본다.

 

이 말은 우리 아버지의 예언이었을지도 몰라 웃자고 남겨 봅니다.

아버지는 항상 나를 보면 말씀하셨다. “인생을 즐겨라!.” 가 아니고 살부터 빼라고. 그러다 당뇨 걸린다고…. 예쁜 막내딸한테 그게 할 소리인지 항상 불만이었는데 우리 아빠는 알고 있었나 보다. 정말 당뇨가 왔네 왔어. 자리 피시라고 할까요?.

 

글/당건회원 - 은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