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50살. 주변 지인들이 겪는 이상 신호들이 나에게도 감지되어 왔다. 갱년기 증상으로 뼈마디가 시린 12월에 미루던 국가검진을 받았다. 검진받기 전 여기저기 아팠는데 걱정과 달리 이상 증상은 없다고 했지만 당뇨라고 한다. 피곤하고 자주 늘어지던 이유가 갱년기 증상이 아니고 당뇨 때문이었나 보다. 당뇨는 생각하지도 않고 있었는데 23년 12월 당뇨 진단을 받았다. 멍했다. 넋이 나간 사람처럼 말도 없어졌다. 남편이 장기 출장 중 이어서 더 그랬다. 아무하고도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 누구하고도.
오래전 일이지만 07년도에 맹장 수술을 했다. 배가 아파 죽겠는데 혈당이 높아서 수술을 못 하겠다고 했던 사건이 떠오른다. 혈당이 높아서 수술을 못 받는 상황에서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젊어서 그랬던 건지 무지했던 건지. 수술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기억이 잘 안 난다. 수술이 잘 되어서 혈당이란 말을 머릿속에서 지운 거 같다. 이제 와 다시 생각해 보지만 배가 아프니 고 혈당이란 말이 중요하게 안 들렸을 거 같다. 중요한 것은 17년도에도 전 단계라는 말을 들었다. 기억해 보니 10년 전과 반응이 같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 아~전 단계구나.” 그냥 지내면 되는구나 싶었다. 당뇨라고 하지 않았으니깐. 바쁘는 이유로 스스로에게 관심이 없었던 거 같다. 사는 게 바빠서 당뇨 진단을 받으면 얼마나 힘든지, 관리를 해야 되는지 조차 몰랐다. 모르는 것이 당연하니 알아보고 했어야 하는데 주변에 당뇨인도 없으니니 더 그랬을 것이다. 16년전에는는 당뇨에 관해 사회적으로도 관심이 없던 것 같다. 지금은 매체에 당뇨라는 질병이 자주 등장한다. 합병증, 당뇨에 좋은 식품 등 그때도 이런 정보가 많고 사회적으로 관심이 많았다면 인지하는 게 달랐을까.
첫 진단받고 6개월간 철저히 절식하고 나쁘다는 건 입에 넣지도 않았다. 정보를 찾고 식단 공부도 했다. 당뇨 커뮤니티에도 가입해 다른 사람들의 식단과 운동법을 봤다. 시행착오도 종종 생겼다. 건강한 당뇨 식인 줄 알았는데 혈당이 높아서 놀라기도 하고 남들에게는 좋다는 음식도 맞지 않아 당황스럽기도 했다. 어설픈 식단에 어설픈 운동까지. 방법은 모르지만 혼자서 스쾃도 하고 걷기도 했다. 걷는 것에도 방법이 있는지 몰랐다. 관리에 시작은 어설픔 그 자체였다. 그래도 노력이 가상한지 혈당 관리가 되었다. 문제는 올바르지 못한 방법 때문인지 살이 빠지고 안색이 좋지 않았다. 주변에서 아파 보인다는 말을 자주 했다. 시간이 약이라고 했던가. 6개월에 시간 동안 어설픈 식단도 운동도 자리를 잡아가니 적응이 되어간다. 혈당. 당연히 안정화되었다. 적응 기간 끝나갈 즘 느껴진다. 몸이 가벼워지고 피곤함이 많이 사라졌다는걸. 문제는 이렇게 평생 살 수 없다는 것이었다. 몸이 좋아지니 기분은 좋은데 한편으로는 삶의 낙이 없어져 우울했다. 외식도 친구들과 만남도 피했다. 고민 끝에 내 삶은 유지하면서 건강한 당뇨인의 삶에 대한 혼자만의 연구를 시작했다.
결과는 먹으면 무조건 움직이기다. 사람이 안 먹고살 수는 없으니 대신 무조건 움직이기. 가족 모임이나 지인들도 편하게 만나되 먹고 움직이기. 식단도 평일에는 건강식으로 먹고 일주일에 한 번은 자신에게 편하게 먹을 수 있는 시간을 주기로 혼자서 타협하고 결심을 했다. 마음을 그리 먹어서 그런지 더 이상 사람들과의 만남을 피하지 않았다. 원래 나로 돌아오는 기분이 들었다. 언제나 밝고 명랑했던 나로.
노력으로 되지 않았던 부분도 있었다. 약이다. 부작용인 건지 약에 대한 거부반응인지 첫 진단을 받고 약을 먹는데 힘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름 약 적응기 같지만 한편으로 약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마음속으로 약만 안 먹을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도 했기 때문이다. 약 먹고 한 달 뒤 수치가 6.4로 내려갔다. 약은 부작용이 심해서 중지하고 관리하기로 했다. 대신 검사는 두 달에 한 번씩. 잘 관리하고 있지만 1년이 지난 시점에 내 모습이 힘들어 보였나 보다. 선생님은 장기전이니 힘들지 않게 관리하는 게 좋다고 약 복용을 권하셨다. 심적 거부인지 약 부작용인지 알고 싶었기에 복용을 시작했는데 같다. 2주간 엄청난 고생을 했다. 온몸이 저리고 아팠다. 선생님을 찾아가 상의 후 다시 단약을 결정했다. 단 당화 혈색소 6.5가 넘으면 다시 복용하는 것으로 약속을 했다. 당뇨인은 평생 단약이란 건 없다고 한다. 나이가 들면 췌장도 위도 함께 늙어갈 테니 어쩌면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때가 되면 약을 먹어야겠지. 나에게도 꼭 잘 맞는 약이 있었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들은 일정 기간 지나면 적응하는데 몸에 문제인지 마음의 문제인지 아직도 모르겠다.
약 없이도 혈당 관리가 잘 되고 있다. 피나는 노력의 결과다. 먹고 운동하기를 반복하면 지칠때도 있지만만 전보다 몸이 덜 아프다. 신기한 일이다. 피곤함도 덜 하고 개운해지는 느낌까지 든다. 몸매 관리는 자동으로 되었다. 한 번씩 간헐적 단식을 해도 빠지지 않던 살이 혈당 관리 후 빠졌다. 잘 먹는데 빠지니 이것 또한 행복하다. 가끔 아주 가끔이지만 먹.방 프로그램을 보면 부러울 때도 있고 저 사람은 당뇨가 없나 궁금해지기도 한다. 이럴 땐 스스로 처방을 내린다. “난 지금 다이어트 중이다.”라고 중얼거리기도 하고 “아니야 난 날씬하고 싶지 않다.” 이러면서 먹고 싶다고 침을 꿀꺽 삼키기도 한다. 이럴 땐 아들을 생각한다.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아들한테 짐이 되지 말자. 무조건 건강한 엄마로 살아보자고 다짐을 한다. 나만의 최면술이자 명약이다.
당뇨관리. 식단, 운동으로 때론 피곤 하지만 새로운 즐거움도 생겼다. 건강하게 차린 밥상 사진을 찍고 기록하는 것. 취미라고 하기 그렇지만 관리 후 생긴 즐거움 이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밥상이 아닌 나와 사랑하는 남편을 위한 밥상인데 괜스레 기분이 좋다. 남편에게 건강식을 만들어 주고 나 또한 관리가 되어 좋다. 입 짧은 남편은 건강식도 잘 먹어주고 예쁜 밥상을 은근히 기대하며 기다리는 눈치다. 밥상을 찍고 기록하고 올리는 것도 빠지지 않고 하려고 노력중이다. 관리 전까지는 바쁘다는 이유로 스스로 돌보지 못했던 시간들이 후회되었다. 세월이 지나 날 위해 시간을 어떻게 보냈고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기억하기 위함이다. 여러가지 변했다. 식단도 운동도 일상도. 걷기를 열심히 하다 보니 하루 8만보도 도전해서 걸어봤다. 시작은 커뮤니티 내 이벤트로 걸었지만 새로운 도전이었고 성공했다. 자는 시간 빼고 종일 걸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힘들다고 생각하면 지옥 이지만 도전이라고 생각하면 즐거움이라 웃음나는 추억이다.
나에게 당뇨란 지금 와줘서 너무 고마운 친구다. 나빠진 상태로 오지 않아서 고맙다. 정신없이 달리기만 하던 인생에 브레이크와 스스로에게 선택과 집중을 할 수 있는 이 시기에 알게 해줘서 고마운 당뇨 친구.
관리가 힘들 때도 있지만 당뇨인이 되고 삶에 활력도 생겼다. 언제까지 단약을 유지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날이 오기 전까지 관리의 끈을 놓지 않을 것이다. 약을 먹어도 나의 먹.운 생활은 영원할 것이다. 일상을 지옥으로 만들지 천국으로 만들지는 마음속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고맙다. 즐겁다. 행복하다. 이 또한 추억이라고 생각한다면 힘든 오늘을 보낸 이 시간마저도 내일이 되면 작은 추억의 일부가 될 것이다.
글/ 당건회원 - 어느덧